본문 바로가기

phrase

다소 이상한 사랑, 김이듬

자두가 열렸다
자두나무니까
자두와 자두나무 사이에는 가느다란 꼭지가 있다
가장 연약하게
처음부터 가는 금을 그어놓고
두 개의 세계는 분리를 기다린다
이것이 최고의 완성이라는 듯이

난 말이지
정신적인 사랑, 이런 말 안 믿어

다행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카페 루이제에서 자두나무가 있는 정원까지 오는 동안
혼자 흐릿하게 떨리는 게 순수한 사랑이라고
나는 우스운 생각을 했다

시시각각 자두가 붉어지고 멀어지고
노을 때문에 가슴이 아픈 거다

최고의 선은 각자의 세계를 향해 가는 것
그러나 가끔 이상하게
멈춘 채 돌아보게 된다

자두나무는 자두를 열심히 사랑하여 익히고 떨어뜨리고
나는 사랑을 붉히고 보내야 한다
사람이니까
그리고 망설일 줄 아는 능력이 있다


다소 이상한 사랑, 김이듬

'phras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행숙, 인간의시간  (0) 2016.12.26
구현우, 드라이플라워  (0) 2016.12.26
태재, 애정놀음  (0) 2016.12.26
엄지용, 눈맞춤  (0) 2016.12.26
하현, 제목  (0) 2016.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