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phrase

강성은, 검은 호주머니 속의 산책

우리는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데
우리는 잡은 두 손을 놓은 적이 없는데
호주머니 속에서
불안은 지느러미를 흔들며 헤엄쳐 다니고
그림자로 존재하는 식물들이 무서운 속도로 자라났다

우리 두 손은 검게 썩어 들어갔다
어째서 너의 손은 이토록 비릿하고 아름다운가
우리는 말하지 않았다
검은 피가 흘러나와 우리 발목까지 적실 때에도
우리는 이토록 생생한 봄을 상상했다

언젠가 우리는 각자 다른 계절을 따라 사라졌지만
호주머니 속에는 아직도 폐허의 공터에
날카로운 손톱으로 서로를 깊숙이 찌른 두 손이
펄펄 날리는 흰 눈을 맞고 서 있다

강성은, 검은 호주머니 속의 산책


'phrase'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연신, 회색 종이 바탕에  (0) 2016.04.11
정철훈, 견딜 수 없는 나날들  (0) 2016.04.11
강윤후, 쓸쓸한 날에  (0) 2016.04.11
정끝별, 발  (0) 2016.04.11
이정하, 아직 피어있습니까, 그 기억  (0) 2016.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