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나 나는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조만간 다시 보자는 말은 했지만 같이 여행을 가자고 말하기엔 이르다.
창문을 좋아한다고 말해서 나도 그게 좋다고 말했다.
저녁을 좋아한다고 말하니 그녀도 저녁이 좋다고 말했다.
슬픔을 아는 사람 같았다.
슬픔을 아는 사람에게선 마치 비 온 뒤에 한 차례씩 부는 바람에 실려 있을 법한 비릿한 냄새가 닥쳐와서
이런 저런 감정을 섞어놓게 한다.
만나고 헤어지고 난 뒤에도 한동안 길을 서성이게 한다.
길을 가다가 알았다.
아무것도 아닌 길에서 그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검고 낮은 돌들이 화단과 보도를 나누고 있었고
그 검은 돌 위에 벚꽃이 내려와 단단히 붙어 있는 밤이었다.
무엇을 좋아해야 할까.
사람을 좋아해야 할까.
지금 어느 한 사람을 좋아하게 된 이 감정 자체를 좋아해야 할까.
대답을 찾으려 했지만
그보다는 밤이 더욱 짙어지기만을 바랐다.
감정을 다 소진시킬 것인지
아니면 감정을 조금 남겨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다
그것이 당장 해치울 수 없는 산더미 같은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금 힘에 겨울 때까지 걸었다.
이병률, 내 옆에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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